그간의 해우소는 다소 억울(?)하고, 아쉬운 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오늘은 질적으로 다른 내용을 다뤄볼까 한다. 7년전 이맘때쯤이였다. 7학년 학생 학부모님께서 연락을 주셨는데 좀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저희 아이가 7학년이고 생각하는걸 좋아하는 아이에요. 생각을 좋아하지만 그걸 글로 써보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하더라구요.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선 철학 공부가 필수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J&B에서 커리큘럼 좀 만들어 주시면 안될까요?" 뜨끔했던 기억이 있다. 좋은 의미에서의 뜨끔이였다. 그간 상담을 할 때면 대부분은 당장 빠른 시일내에 결과가 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곤 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블루 (에세이대회/저널)와 바이올렛(보딩 입학에세이) & 레드(대학입학에세이)는 늘 인기 프로그램이였다. 에세이대회는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결과가 눈 앞에 보이는 프로그램이고, 바이올렛과 레드는 보딩과 미국 대학을 준비한다면 에세이가 필수 이기 때문에 그 필요성에 대해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오렌지프로그램, 철학 수업은 좀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는 좀처럼 오렌지 프로그램을 홍보하지 않았다. 공식 프로그램으로 만든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이 프로그램은 그 가치를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아쉽게도 해야 할 "명분"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에세이를 지도하는 우리 관점에선 그린과 오렌지가 진짜 에세이 "실력"을 향상 시키는, 내 아이에게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이고, 우리가 앞으로 계속 발전 시켜나가고 싶은 프로그램이지만 수요에 따라 공급이 정해지는 교육 시장에선 늘 뒷전 일 수 밖에 없는 생태계를 잘 알기에 우리 또한 필요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세우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다시 7년전 대화로 돌아가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런식으로 답변 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저희는 철학 수업을 진행하지 않아서요. 7학년이라고 하셨으니 John Locke Essay Competition의 자격이 되는데 해당 대회가 철학을 기반한 에세이 대회이니 참여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고나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우리야 당연히 커리큘럼을 맞춤형으로 만들 수도 있고, 기쁜 마음에 프로그램을 기획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에 고객이 원하는 것은 눈으로 보여지는 결과일 수도 있다는 편견으로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을 그리 진심어리게 듣지 않았던 것도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철학"이라고 하면 멋진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생의 지침정도로 삼는 뭐 그런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철학이라는 것은 에세이와 아주 긴밀한 연결이 되는, 에세이를 배운다면 철학을 선행해야 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글쓰기에 있어서 철학은 너무나 중요하다. 더욱이 J의 전공이 철학이며,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쓰는 글의 깊이, 논리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고 있기에 나 또한 J&B를 처음 만들 때 에세이의 실전도 중요하지만 그 에세이를 잘 쓰게끔 만드는 학문에 대해 가르치는 커리큘럼을 만들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에세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난해하고 대중화 되는 액티비티가 아닌데 거기에 어려운 컨셉인 철학까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고, 우리의 고객들이 더 필요로 하는것에 도움이되고자 했던게 있었기 때문에 철학은 잠시 접기로 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에세이를 배우고 싶다고 접근 했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곧, 내 아이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에세이로 수상 경력을 만들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 하기 때문에 에세이의 근본을 건드리는 철학은 더욱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커리큘럼을 만들어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대회를 준비하고 싶지 않다던 어머님께서 그래도 우리와 해보겠다면 블루프로그램을 등록 해주셨다. 우리가 사실 실전 에세이를 준비하는 이유는 높은 수요 (대회)에 맞춰 준비하되 우리의 컨설팅 방식으로 학생들이 조금 더 에세이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가 있는데, 이 고객은 특히 철학 수업을 원했던 만큼 세션마다 Logic에 대해 강조해서 진행 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 수업 태도도 좋았고, 우리도 에세이 대회이긴 하지만 학생이 원하는 방식에 맞춰 철학 수업을 틈틈히 넣어 준비해서 일까, 짧은 시간동안 학생의 머릿속 생각을 깔끔한 글로서 정리하는데 많은 성장이 보였다. 다행히(?) 결과도 좋았다. 그렇게 학생과 인연이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어머님께서 상담 요청을 해주셨다. "맨 처음 상담할 때 철학 수업 이야기 드렸었는데.. 혹시 지금도 어려울까요? John Locke 때 철학수업 조금씩 넣어 주셨는데 그걸 따로 빼면 수업이 될 것 같아서요.." 이 어머님은 정말 진심이신 것 같았다. J에게 긴급 회의를 요청 했다. 그렇게 해서 그 고객의, 그 고객에 의한, 그 고객을 위한 맞춤형 철학 수업이 탄생 했다. 이는 우리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바로 채택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J&B의 첫 철학 수업이 시작된 것이였다. 고객은 매번 여름 방학 기간 동안은 우리와 철학 수업을 했고, 학기중일때는 필요한 에세이 프로젝트를 우리와 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자부할 수 있는, 글쓰기 실력이 가장 늘었다고 손 꼽는 고객중에 한 명이였고, 그렇게 고객이 하이스쿨을 졸업하여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까지 성장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철학 수업을 하면 결과를 낸다' 라는 또 어떤 목적성의 글이 될 것 같아 여기에선 강조하지 않을 거지만 고객은 여러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고, 무엇보다도 말하는 방법, 글의 깊이 등이 outstanding이였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이 한 고객만 철학을 사랑했다면 우리는 그냥 맞춤형 프로젝트를 했던 좋은 추억으로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개월에 한 번 뜨문뜨문.. 요청이 있지 않은가. 물론 오늘 사례의 어머님만큼 "철학" 그 자체에 대한 애정까진 아니였지만.. "저는 잘 모르는데 아이가 철학을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요. 학교에서 철학 클럽도 하는 것 같은데 에세이 대회를 준비해보면 되나요? 철학을 잘 모르는데 바로 철학 에세이 대회 준비 가능한가요?" "IPO 준비하는데.. IPO는 시험 당일에 그 자리에서 주제가 발표된다고 하네요. 철학을 배워볼려고 하는데 "한국어"로 철학을 가르치는 곳이 있던데.. 시험은 영어로 보는데... J&B가 도와줄 수 있나요?" "아이한테 실망스러웠어요. 늘 디베이트는 잘한다고 칭찬을 받는데, 이번에 에세이 점수 받아온거 보니 글에 포인트가 없다고 하네요. 글을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데 뭘 해야하죠?" 이전 같으면 그저 유사한 다른 프로그램을 소개 시켜드렸을 것 같지만 실제로 철학에 관심이 있는 고객들에게 철학 수업을 했을 땐 효과(?)가 좋았기에 조금씩 unofficial한 철학 수업을 안내드렸고, 그렇게 학생들에 맞춰 커리큘럼을 수정하면서 이 프로그램이 under에서 조금씩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늘 강조하지만 우리는 에세이 "서비스" 이전에 "교육"을 하고 싶은 곳이고, 학생들이 한 명이라도 만족스러운 에세이를 쓸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철학 수업을 해야 하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였다. 에세이대회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에세이의 입문으로서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있고, 혹은 에세이를 잘 작성하기 위해서 실전보단 연습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나름 이 영역을 탐구하고 싶어 하는 고객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그간 우리의 경험을 기반하여 오렌지 프로그램 - 철학 수업을 런칭 하게 되었다. 시작을 하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셨고, 특히 우리의 그린프로그램을 경험 해보신 고객분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프로그램인 오렌지 프로그램, 철학 수업을 등록 해주셨다. 조금 더 대범(?)하게 철학에 대해, 철학이 왜 글 쓰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지를 알리기 위해 조금 더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아주 최근 썸머캠프 (6주용) 철학 수업, IPO Socratic Summer Prep세션을 기획했고, 최대 5명이 등록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사실 내가 J에게 2명만 이 수업에 등록해도 우린 성공이다! 라고 했었다) 마감일이 되기도 전에 5명이 모두 등록이 되었다!!!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했다. 이렇게 나름 철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서. 그리고 민망했다. 철학이 에세이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수요만 따라가느라 이 프로그램을 진작에 기획하지 않은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