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어김없이 Alderman 도서관 구석에서 철학 에세이 과제와 씨름중이였다. 일주일에 두 개 꼴로 쓰는 철학 에세이지만 매번 내 주장에 반대하는 counterargument를 생각해 내기란 생각보다 쉽지않았다. 내 주장을 더 강화하기 위해 아니 더 맞다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내 주장의 반대의 주장을 언급하고, 그리고 그것을 무모화 시키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금 과장하자면 내 대학 그리고 대학원 시절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주장을 펼치는데 그리고 그 주장을 지키는데 쓴거 같다. 토론과 글 로써. 지금와서 대학교 시절을 추억팔이를 하니 문득 두가지 생각에 사로 잡혔다. 첫째, 내가 참 에세이에 진심이었구나. 둘째, 왜 대학에 가기전에 이것을 진지하게 접해보지 못했을까? 오늘은 이 두번째 생각에 대해 이야기좀 해볼까 한다. 내가 비로소 대학에 가서 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에세이에 대한 열정이 극대화 된것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분명히 있다. 허나, 에세이를 개별적인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고 혹은 에세이 라는건 그냥 하면 되는거지라는 맹목적인 무지함으로 장착한 교육체제 그리고 우리들의 보편적인 무지함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교육 체제 안에서 에세이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함이 휘발유가 되어 에세이 교육에 불을 지폈다. 절대로 꺼지지 않을것 같은 불을. 말만 할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오산. 허나 그 누구나 할 수 없는 전문 기술. 에세이. 한국, 미국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가 에세이 교육을 죽였다. 대부분 초중교육에서는 에세이라는 개념보다는 책 summary 혹은 나의 의견을 몇 문단 적는게 전부다. 에세이라는 체계를 배우기보다는 그냥 단어 가지고 장난치는 거다. 글 구조, 색깔, 문법 더 나아가 logic을 제대로 가르치는 수업도 없고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에게 에세이는 그냥 하는거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가르치지도 제대로 배울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고등학교에 가서야 나름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이 제대로 된(?) 교육안에 에세이는 없다. 정해진 수업진도를 빼는대에만 모든 정신이 집중되어 있는 대부분의 교육자들에게 에세이만을 위한 시간 혹은 수업은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에세이 교육은 필요가 아니라 사치다. 간혹 몇 몇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쓴 에세이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할때 너무나 general한 피드백에 방향성 그리고 열정을 잃는다. 대학 교육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거의 모든 교수들이 학생들이 에세이를 왠만큼 쓸 수 있다는 맹목적 믿음에 기반하여 수업이 이루어 진다. 에세이 낙오자들에게는 대학이라면 있는 writing center에 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한다. 여기에 가면 실질적인 에세이 도움을 받겠지라는 무한믿음이 바로 깨진다. “Explain this” “awkward sentences” “what exactly do you mean here?” 등 별로 도움 안되는 코멘트를 보며 실질적인 도움 대신 실질적인 실망과 절망이 찾아온다. 수많은 에세이과제 감옥에 갇혀 힘겨워 하는 수감자들은 졸업을 위해 대신 내 과제를 해줄수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우리 모두가 에세이 교육을 죽였다.